맹씨행단
맹씨행단
아산 맹씨행단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정승 맹사성이 기거하였던 사적지로 1963년 1월 21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5(중리 300번지)에 있으며, 금곡보건진료소 맞은편 골목길로 약 300m정도 올라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
'행단'이란 말은 고택의 뜰 안에 600년도 더 된 은행나무(쌍행수)에서 따온 것으로, 본래 '행단(杏壇)'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는 데서 유래된 말로 일반적으로 학문을 갈고 닦는 곳을 말한다. 고려말에 지어진 유일한 고택(민가)이 남아 있다. 고택의 가구구조에서 고려 말 조선 초기 양식의 솟을합장과 대공을 볼 수 있다. 고택의 솟을합장은 아주 약하게 안으로 굽어진 형태로, 상단은 종도리 좌우에 대서 종도리의 수평이동을 방지하고 하단은 종보에 지지하고 있다.
솟을합장은 봉정사 극락전에서부터 17세기까지 사용되며, 주로 주심포계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또, 대공은 동자기둥처럼 가늘고 긴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소로를 얹고 종도리 받침장혀를 받치고 있다. 이러한 사다리골 형태의 대공은 부석사 무량수전(13세기)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며,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1375년), 부석사 조사당(1377년), 해인사 동서 사간고(1488년)등과 유사하다. 이와 함께 첨차에 나타나는 쌍S자 무늬는 무위사 극락전(1476년 이후 건립)이나 은해서 거조암 영산전의 쇠서와 유사하다.
고려말 조선초의 명재상인 맹사성(孟思誠)이 기거하고 후학을 길러낸 곳이다. 맹사성(1360~1438)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의 명재상으로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7일간 단식하고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판서와 정승의 높은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도 검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다닌 우리나라 대표적 청백리로 그 이름이 높다.
아산 맹씨행단에는 고택, 세덕사, 구괴정, 쌍행수가 있다.